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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키 '자살' --1편

Uncle Lee 2016. 12. 20. 16:31

1. 자살 개요

1.1. 자살의 정의

"자살이라는 것은 죽음에 대한 의지를 지니고 자신의 생명을 해쳐서 죽음이라는 결과에 이르는 자멸행위이다."- 세계보건기구 -


-- 관련 학자들이 자살에 대해 내린 정의는 다음과 같은 예가 있다.

"희생자 자신이 결과를 알면서도 적극적, 소극적 행동에 의해 직접, 또는 타인을 통해 행하는 죽음을 자살이라고 부른다."- 뒤르켐(1897) -


"희생자 자신이 희생이 아니라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혹은 죽음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한 행위의 결과 일어나게 된 죽음을 모두 자살이라고 부른다."- 알버크(1930) -


"자살은 삶을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사회적 의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명석한 인간이 행한 행위를 말한다."- 아킬 델마(1932)-


"자살은 죽음을 수단이나 결과로 간주하여 자기 스스로 죽는 행위다."- 드에(1947) -


"자살은 실존에 관한 문제의 해결 방법을 주체의 자발적인 죽음에서 구하고 발견하는 행동이다."- 바에슐러(1975) -


1.2. 자살에 대한 어록[편집]

"죽을 때에 죽지 않도록 죽기 전에 죽어두어라. 그렇지 않으면 정말 죽어버린다." - 프리드리히 엥겔스 -


"어떠한 이에게는 서있는 것보다 앉아있는 것이 낫고 앉아있는 것보다는 눕는 것이 낫다. 또한 어떠한 이에게는 서있는 것이 앉아있는 것보다 낫고 사는 것보다는 죽는 것이 낫다."
- 아랍 속담 (자살자들의 묘비에 즐겨 쓰임)


"본성이 우리에게 준 가장 훌륭한 선물은 삶으로부터 도망치게 내버려둔다는 점이다"- 몽테뉴 -


"왜 사람들은 내가 존재하는 것에 더 이상 동의하지 않는데도 그 사회를 위해 일을 하며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정해진 사회 규약들을 지키기를 바라는 것일까? 사회는 상호 이익에 근거를 두고 세워진 것이지만 이 사회가 나에게 너무 짐이 될 때는 과연 누가 나로 하여금 이 사회를 스스로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2]- 몽테스키외 -


"사회는 숙명을 넘어 온갖 종류의 물질적, 도덕적 불행을 낳는다. 그리고 죽음으로써 사회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려는 사람들을 처벌할 권리를 사회에 부여하는 것은 경솔한 일이다."- 렌즈버그[3] -


"자신의 종말을 기다리는 사람은 엄격한 영혼을 가졌다기보다는 오히려 본성이 감퇴된 것이 아닐까?"- 샤토 브리앙 -


자살에 이르게 되는 동기는 989가지, 자살 방법은 83가지에 이른다.- 1969년, 세계보건기구의 연구보고


"사람은 능숙하게 탈 배를 선택하고 편안하게 살 집을 고른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을 떠날 방법을 선택할 권리도 있지 않을까? 특히 죽음에 관해서는 무엇보다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 마련이다."- 세네카(기원전 1세기) -


"사람이 죽음에 이르는 방법을 완벽하게 연구할 수는 없다."
- 스칸디나비아 격언


"자살하는 모든 사람들은 유죄"
- 드니 디드로 -


"잠이 좋다. 더 나은 것은 죽음이다. 아예 태어나지 말았더라면 가장 좋았으리라."- 하인리히 하이네 -


"자살 그것은 신이 인생의 온갖 형벌 중에서 인간에게 부과한 으뜸 가는 은혜다."- T.리비우스 -



"가장 좋은 것은 태어나지 않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 아무것도 되지 않는 것이다."
"자살을 생각하는 일은 커다란 위안이 된다. 그 생각으로 불쾌한 밤을 잘 지내게 된다."
"더 이상 자신있게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당당하게 죽음을 택하라."- 프리드리히 니체 -



"죽음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일어날 수 없다."- 월트 휘트먼 -


"죽음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 전에 겪게 되는 죽음에 대한 공포, 그것이다."[4]- 바키리데스 -


"죽음은 단지 한순간의 고통이지만 삶은 기나긴 고통이다."- 버나드 조지프 소린 -



"참으로 위대한 철학의 문제는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자살이다. 인생을 괴로워하며 살 값어치가 있나 없나 하는 판단을 하는 것, 이것이 철학의 기본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살인에는 언제나 이유가 있다. 그러나 삶에는 정확한 의미를 부여하기가 어렵다. 자살은 위대한 예술작품처럼 마음의 고요함 속에서 준비된다. 삶의 이유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확실한 죽음의 이유도 갖고 있다."
"자기 자신을 죽일 수 없는 한 사람은 인생에 관하여 침묵을 지켜야 한다."- 알베르 카뮈 -



"자살하는 힘을 가진 자는 행복하다."- 앨프리드 테니슨 -


"자살을 위한 타당한 이유를 갖다 붙이는 사람은 시원찮은 사람이다."- 에피쿠로스 -



"천재가 아니면 죽는 것이 낫다."
오토 바이닝거, 사인은 자살.



어떤 당나귀가 죽으면 자신의 비참한 운명이 마감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쁜 마음으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운명의 여신은 그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나귀가 죽자 사람들은 가죽을 벗겨 북을 만들었고 그 북을 마구 때리며 축제를 벌였다. 그리고 울려퍼지는 북소리에 맞춰 처녀들은 풀밭에서 즐겁게 춤을 추었다.
- 호세 호아킨 페르난데스 & 호세 로사스 모레노, 똑똑한 바보 中 <불행한 당나귀>



"면도칼은 아프고 강물은 축축하다. 산은 흉터를 남기고 약은 경련을 일으킨다. 총기 사용은 불법이고 올가미는 풀리며 가스는 냄새가 지독하다. 차라리 사는 것이 낫다."- 도러시 파커 -



"인간은 자살할 권리가 있을까? 그렇다. 그의 죽음이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고 타인이 그에게 너무 고통스럽게 느껴질때는 자살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저항하지도 않고 슬픔에 자신을 내맡겨버리는 것, 즉 더 이상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것은 이기기도 전에 전투를 내팽개쳐버리는 것과 같다. 절망의 행위로서의 자살은 나태함일 수 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



"어떤 면에서 자살은 비열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적어도 안이한 해결 방식임에 틀림없다. 나는 내가 내 자신을 죽일 수 있음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파괴하는 것으로부터 아주 풍요로운 원천을 발견한다. 그러나 물론 이것은 내가 자살하지 않을 때에만 유효한 것이다."- 이마누엘 칸트 -



"사람은 자신이 갇힌 감옥의 문을 열고 달아날 권리가 없는 죄수이다. 그는 신이 부를 때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 플라톤 -


"자살하는 것은 세상에 진지한 것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모리스 바레 -


"자살행위는 한번도 자살시도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과 앞으로도 결코 자살을 시도하지 않을 사람들에게만 공포를 준다."- 베르나노스 -


"완벽한 행복이 어떤 것이든 간에, 종종 그가 때마침 할 수만 있다면 자살은 현자들의 권리이다."- 카토 -


"사람들은 인간의 권리 안에 있는 또다른 권리를 잊어버린다. 자기 모순에 빠지거나 없어질 권리."- 보들레르 -


"자살은 애수어린 한 편의 시이다. 감정을 죽인 채 늙을 때까지 생명을 연장하든가 열정의 순교를 받아들여 젊어서 죽기, 이것이 우리 삶의 숙명이다."- 발자크 -


"자살은 친근하고도 기나긴 운명으로 준비된다. 자살은 문학적으로 가장 잘 준비되고 정교하게 손질된 종합적인 죽음이다."- 바슐라르 -


"자살은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살해의 욕구, 살해당하려는 욕구, 살려는 욕구."- 메닝거 -



"인생에서 완전히 길을 잃고 희망마저 없을 때, 삶은 치욕이고 죽음은 의무가 된다. 최고로 불행한 순간은 집을 뛰쳐나올 수도 집안에 틀어박혀 있을 수도 없을 때이다. 야만인들은 결코 생각해내지 못하는 자살을 섬세한 영혼의 소유자들은 실천한다."- 볼테르 -



"죽음은 나의 고상한 친구들에게는 모호한 감옥의 종말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병이다. 그와 함께 조용히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에게 말하라, 네가 행복한 동안 죽이라. 왜냐하면 제시간에 닥쳐오는 죽음은 고통이 아니라 피난처이기 때문이다."- 페트라르크 -



"삶은 타인들의 의지에 달려 있으나, 죽음은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다."- 몽테뉴 -


"심장은 권총을 열망하고 목구멍은 면도날을 꿈꾼다."- 마야코프스키 -


"인간에게는 세 가지 사건이 있다. 태어남, 삶, 죽음. 인간은 태어남은 느끼지 못하지만, 죽음으로 고통받고 삶은 잊어버린다."- 부뤼에르 -


"사람은 태양도 죽음도 똑바로 바라볼 수 없다."- 로슈푸코 -


"나는 미래를 증오한다. 미래는 나의 죽음을 포함하고 있다."- 앙리오 -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는 동안 베르테르가 자기 자신에게 편지를 썼던 것과 같은 순간을 한번쯤은 가져야 한다."- 괴테 -



"원하는 순간에 자살할 수 있는 확신이 없을 때 우리는 미래를 두려워하게 된다."
"원할 때 죽을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살고 있다. 자살이라는 '가능성'이 없었다면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자살했을 것이다."- 에밀 시오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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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세 상 에 서 나 를 지 우 는 일.
완벽하게 지워도 지우개똥은 남는다.
지우개똥보다 오타로 얼룩진 인생이 낫다.
 
〈오타로 얼룩진 인생1〉[5]
사랑이 떠낫다. 내 생명이 떠낫다. 내 전부가 떠낫다. 사랑이 어떡게 변하니,
라고 말했던 그 사람이 떠낫다. 이제 내게 남은 건 그 사람에 데한 기억뿐.
도저히 지워지지 않는 그 기억을 지우기 위해 나를 지우는 건데 그거또 죄일까.
 
맞다. 죄다. 당신이 지워지면 누군가가 당신을 못잊고 그리워할 것이다.
지금 당신처럼 기억을 지우지 못해 힘들어할 사람, 그 사람이 누군지 생각해보라.
지금 머릿속에 한두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들이 바로 당신이 이 세상을 살아야 할 이유다. 인생을 놓지 말아야 할 분명한 이유다.
 
〈오타로 얼룩진 인생 2〉
나는 태어날 대부터 가난했다. 단 한 번도 세상은 내게 기회를 주지 안앗다.
나는 늘 뒤에 아레에 서야 했다. 사람드리 먹고 남는 것만 머거야 했다. 사람드리 입고 남는 것만 입어야 했다.
이러케 오타로 얼룩진 인생을 지우는 거또 죄일까.
 
맞다. 죄다. 당신이 지워야 할 것은 기회를 주지 않은 세상, 다 먹고 다 입고 남은 것만 주는 세상이다.
당신은 지워질 사람이 아니라, 지우개를 들고 세상을 지워야 할 사람이다. 당신보다 오타가 많은 사람도 버젓이 자서전을 내는 세상에 분노하라. 분노는 당신이 이 세상을 살아야 할 이유다. 인생을 놓지 말아야 할 뜨거운 이유다.
 
〈참고 : 공동명의〉
내 생명의 주인은 누굴까?
나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내 생명은 공동명의다.
나와 내 가족과 친구들의 공동명의다.
나와 내 가족과 친구들의
도장을 다 받기 전에는
함부로 팔아치워서는 안된다.
 
〈반대어 : 다시〉
다음 더하기 시작.
 
아무리 딱 죽게 생긴 상황일지라도
다음이라는 기회가 있고,
다음이라는 기회를 살리는 방법으로 시작이 있다.
'다시'가 실패하는 경우를 위해
'또 다시'라는 용어도 준비되어 있다.

- 정철(카피라이터), 《불법사전》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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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소설은 끝까지 가 보지 않으면 희극인지 비극인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자신이 소설의 주인공인지, 조연인지도 직접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처음 몇 쪽 읽고 별로라며 덮어 버리기에는 인생이란 소설에 흥미로운 구석이 너무나도 많다.
- 하지현, <청소년을 위한 정신의학 에세이> 中 '무너진 영혼의 돌이킬 수 없는 선택 : 자살' -



어떤 경우에건 자살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것은 싸움을 포기하는 것이니까. 살아서 별별 추한 꼴을 다 봐야 한다. 그것이 삶이니까.- 김현(1942~1990, 문학평론가) -



"나는 여러분에게 내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말할 것입니다... (중략) ...내 손이 난간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혼자 생각합니다. 오 신이시여, 제가 방금 무슨 짓을 했나요? 이 다리에서 떨어진 거의 모든 사람들, 그들은 그 순간 정확히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습니다. 갑자기 그들은 죽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죽었습니다."
- 금문교에서 뛰어내렸던 한 생존자, 2008년 증언록. R.J.Comer 재인용, p.255 -



"당신이 이 페이지를 읽는 것을 끝내기 전에, 미국에 있는 어떤 사람들은 자살을 시도할 것이다. 적어도 60명의 미국인이 내일 이 시간까지 자살할 것이다. 그 중 많은 수가 다시 자살을 시도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자살에 성공할 것이다."- 슈나이드만 & 만델코른 (1983) -


죽기 전에 산 사람의 집단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은 극단적인 악이다. - 세네카


2. 자살 원인

현재의 한국의 경우 10대의 자살원인은 주로 성적 지향(性的 정체성), 학업, 왕따 관련 문제, 20대는 취업난, 연애 문제 관련, 30대부터는 생활고가 많다. 그리고 노년층 일부는 혼자 있는 것에 대한 극도의 외로움 때문에 자살하는 경우도 있다

유명인이 자살로 목숨을 끊으면 연쇄적으로 청소년 자살률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것을 베르테르 효과라 하는데 독일의 문호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가 자살을 하자 그 당시 젊은이들이 베르테르처럼 권총 자살을 한 데서 나왔다.
인류가 진화해온 환경에서 본다면 인류의 조상중 사회적으로 생활이 힘들거나(유전적 결여) 집단에서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파악될 경우 자살을 하는 것이 유전인자를 공유하는 타 개체의 생존확률을 높여주므로 이러한 자살의 형질이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다(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즈 The Selfish Gene, 1989년)의 입장으로 본다면 사회적인 교류 유전자가 결여(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간에)되어 있는 극단적인 개인주의 유전자 개체가 도태되기 위한 행위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경우엔 유전인자의 우성과 열성, 시점에 따른 각 개체의 진화와 도태를 우선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때문에 자살의 선과 악을 구별하는 의미가 없게 되므로 자살을 범죄시 하는 개독기독교인들에게 좌절을 안겨주게 되었다)


3. 자살에 관한 이론

19세기 초 정신의학 분야의 권위자였던 도미니크 에스키로르와 모로 드 토르 두 의사의 이론은 자살자들을 심신상실자로 보는 것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뒤를 이은 모리스 하루와치의 이론은 자살을 사회 정세를 반영하는 정신적인 트러블과 연결시켜 생각한 것이다.

19세기 말에는 근대사회학의 아버지 뒤르켐의 영향으로 건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도 개인적인 이유로 자살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또 자살을 사회적 측면과 관련된 현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뒤르켐은 자살을 사회적 연대력 및 규제의 정도라는 기준에서 분류하고자 시도했으며 이기적 자살, 이타적 자살, 아노미적 자살, 숙명적 자살의 4가지로 분류.

근래에는 철학정신분석학 덕분에 자살은 사회심리학적 현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우울로 인한 자살, 병적 자살, 보복적 자살, 안정된 상태에서의 자살, 이기적 자살, 의무적인 이타적 자살, 편집광적 자살, 충동적 자살, 운명론적 자살, 영웅적 자살, 적극적 자살, 소극적 자살, 이론적 자살, 열광적 자살, 망상적 자살, 혼돈 상태에서의 자살, 살인 청부업자에 의한 자살, 희생적 자살, 유희로서의 자살, 전략적 자살, 경계반응적 자살 등.


3.1. 에밀 뒤르켐의 저서 《자살론》

프랑스의 범죄학자이자 사회학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

선택과목으로 형사정책을 선택한 고시생은 잘 알아두기 바란다. 시험에 나온다.


  • 이기주의적 자살
    사회적 연대력이 약화되었을 때 나타나는 자살. 과도한 개인주의가 원인으로 꼽힌다. 이들이 자살하는 것은 외로움과 같은 타인과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문제 때문이다.

  • 이타적 자살
    사회적 연대력이 강화되었을 때 나타나는 자살. 예를 들어 자폭 테러, 순장, 정절을 지키기 위한 과부의 자살(그 이후에 열녀문이 세워지기도 한다[11]), 카미카제[12] 등. 사이비 종교에서 강요하는 자살과, 종교적 논리로 미화된, 불교소신공양, 자이나교의 종교적인 의지의 단식으로 유발된 고의적 아사를 하는 것도 이것으로 볼 수 있다.

  • 아노미적 자살
    무규제(normlessness) 상태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자살. 사람은 규제와 억압이 적절한 상태로 존재할 때 비로소 편안함과 확실함을 느끼며, 그 반대의 경우 불안과 스트레스를 호소하게 된다고 본다. 즉 사회적으로 규제가 너무 약할 경우의 자살을 다룬다. 대표적인 예로는 실직한 가장의 자살이 있다.
    뒤르켐의 의하면 경제호황기가 되어 자신이 성공할 것이라는 목표로 꿈을 키우게 되었으나 그 목표나 과정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살하는 것도 아노미적 자살에 속한다.

  • 숙명론적 자살[13]
    사회적 규제가 너무 강할 경우의 자살로 아노미적 자살에 대조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꿈도 희망도 없는 노예나 계층 이동 사다리가 완전히 막혀 극단적인 빈곤을 평생, 대물림으로 강요당하는 극단적인 양극화에 속한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 묘사하자면 "무슨 노력을 해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어, 이게 숙명이야" 정도. 최근 전세계적 경제난과 양극화로 인하여 한국은 물론 미국, 유럽 등지에서도 이러한 자살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사회 통제가 지나치게 강하거나(숙명론) 약해도(아노미) 자살율이 올라가고, 사람 간 유대가 지나치게 강하거나(이타적) 약해도(이기적) 자살율이 올라간다는 말이며, 결론적으로는 '사회 통제와 사람 간 유대는 적당한 게 좋다' 는 것이다.


3.2. 에드윈 슈나이트만의 이론

《심리부검 인터뷰》의 저자이자 자살에 대한 권위자로 알려진 에드윈 슈나이트만(E.S.Schneidman)

죽음의 추구자(death seeker) : 삶을 끝내려는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죽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에 의해 확실한 자살이 보장되는 방법을 택한다. 권총자살 같은 즉각적이고 확실한 방법을 선호한다. 이러한 파괴적인 욕망은 단지 짧은 시간 동안만 지속되며, 우발적인 충동은 바로 다음날 혹은 심지어 바로 다음 시간에 일시적으로 사그라들 수도 있다.

  • 죽음의 개시자(death initiator) : 삶을 끝내려는 분명한 의도를 가졌으나, 죽음이란 이미 시작되었으며 자살은 단지 그 과정을 좀 더 빠르게 앞당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인들이나 투병 중인 중환자들이 선택하는 자살이다. 즉 자신의 삶은 이미 끝나버렸으며 죽음의 과정이 진행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 죽음의 무시자(death ignorer) : 삶을 끝내려는 의도라기보다는, 현재의 삶과 더 나은 사후세계 혹은 다른 실존을 바꾸는 것이라고 믿는 자살이다. 어린이들의 자살[14]이나 사이비 종교 집단의 집단적 자살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들은 죽음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인식하지 못한다. 환생이나 이계가 존재한다면 나름 의미가 있는 자살이겠지만 현재로선 환생이나 이계의 존재 여부가 불분명하다.

  • 죽음의 도전자(death darer) : 삶을 끝내려는 의도 자체가 분명치 않으며 마지막 순간에조차도 죽으려는 의도에 있어서 양가감정을 경험하는 경우. 이들은 "확실히 죽음이 보장되는 방법" 보다는 "죽을 위험이 있는 방법" 을 택하며, 특히 수면제의 과용과 같은 약물복용 방법을 선호한다. 그 외에도 넓게 보면 러시안 룰렛을 하다가 사망한 사람 역시 고인에게 삶을 끝내려는 의도가 있었을지 분명치 않으므로 이 범위에 속한다. 이들은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여 자신의 행동을 알리며, 의료진의 개입을 통해 극적으로 살아나기도 한다.


  • 슈나이드만이 보기에 자살은 극심한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결과이며, 정신적 고통은 1) 무망감(hopelessness)과 2) 이분법적 사고(dichotomous thinking)에 의해 촉발된다. 무망감은 현재 주어진 환경과 여건, 자신의 기분이 전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적인 신념이며, 이분법적 사고는 주어진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이것 아니면 저것" 수준의 관점에서 "그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죽는 것뿐이야." 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4. 인식

    일단 뜻을 이루기 위해서, 또는 치욕을 피하기 위해서 자살하는 것은 보통 '자결'이라고 하며 일반적인 자살과는 보는 시각이 다르다.


    4.1. 고대 세계의 자살[편집]

    춘추시대 은 전쟁터에서 적군 앞에서 죄수 등을 자살시켜 적을 경악에 빠지게 한 뒤 공격을 했지만 이는 적에게 충격을 주기 위한 방법 중 하나.

    고대 그리스에서는 당시 유행했던 스토아 학파의 영향[이성에 충실하고 인간다움을 중시했기 때문에 정치적 목적으로 인한 자살이나 명예에 의한 자살을 권장했으며, 심지어 매우 가난하거나 불치병에 걸렸을 경우에도 자살을 권장했다]으로 인해 자살자가 마구 늘어나자 국가적으로 '자살 허가제' 를 실시하여 민간에서 어설프게 자살 방법을 선택하기보다 극약을 처방하여 한 번에 죽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놓는다. 따라서 정부가 자살 사유를 심사하여 타당한 경우에는 햄록[미나릿과 식물. 소크라테스가 독살 당했을 때 들었던 독약이 바로 hemlock이다.]을 처방하여 '인간다운 죽음' 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어떻게 보면 안락사의 원조인 셈.

    고대 그리스의 문학에서는 자살이 주로 치욕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이루어지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미쳐서 양들을 학살한 아이아스가 있다.

    고대 로마제국에서는 나이가 들어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쇠약해지면 곡기를 끊고 스스로 굶어서 생을 마감하는 풍습이 있었다.

    4.1.1. 한국의 자살[편집]

    고대 한국, 특히 고구려에서는 해명태자, 호동왕자 등이 부모와 갈등을 빚자 자살을 선택했다.

    유교적 색채가 짙은 한국에서는 자식이 먼저 죽는 것이 최악의 불효라고 하여 매우 나쁘게 보았다. 하지만 그래도 부모는 부모니까 먼저 사망한 자식이라도 장례는 치러주었다. 다만 먼저 사망한 자체를 불미스럽게 여겨 조상들이 무덤이 있는 선산에 묻히지 못한다든가 하는 장례 절차상의 불이익이 있었다. 자살하거나 사형을 당하여 더욱 불미스럽게 사망한 자식은 화장을 하여 강에 그 재를 뿌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뜻을 드러내기 위해서 목숨을 끊는 행위는 크게 나쁘게 보지 않았고 오히려 의기가 높다고 칭송하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여자가 절개를 지키고자 자결하거나 구한말 일제 병탄 때 이에 항의하여 자결한 사람들(예시 : 민영환, 매천 황현)이다. 절명시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하멜표류기에서는 병자호란때 적과 싸우다 전사한 사람보다 산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한 병사들의 수가 더 많았으나 사람들은 그들을 모두 동정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참고로 동양에서는 자살하는 것이 자신의 결백을 끝까지 주장하는 것이지만 서양에서는 자살하면 자신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행위로 보며 이러한 가치관 차이 때문에 오해가 빚어지기도 한다.

    4.2. 일본의 자살[편집]

    무사도를 중시하는 일본에서는 할복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는 자신의 결백함이나 명예를 위해 배를 칼로 긋는 것이다. 주군에 대한 충성심의 표현이거나 전쟁에서 진 장수가 살아남았을 때에 모든 일의 책임을 지기 위해 이루어졌던 이 행위를 고결한 행위라 하여 근대 일본에선 표절 시비에 휘말렸던 문학 작가마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고자 할복 자살을 시도했다고 한다.

    스스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진 할복 자살 덕분에 일본 내에서 자살이란 행동은 꽤나 숭고한 행위로 여겨졌으며 죄를 지은 인간이라 해도 자살을 했을 경우 명복을 빌어주는 행동을 해주었다. 또한 특공 또는 희생이라 하여 목숨을 걸고 영웅적인 죽음을 맞이하여 후대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일본은 전쟁 중에 성이 함락되었을 때 또는 전쟁에 패했을 때 성주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는 의미에서 할복을 하도록 되어있었다. 시바타 카츠이에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패해서 할복했다. 이 당시의 사고방식으로 볼 때 우키타 히데이에모리 데루모토를 살려둔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엄청난 대인배인 셈.

    문화적 가치관의 차이겠지만 서양에서는 위와 같은 일본식의 '불명예를 씻기 위한 자살' 혹은 '자신의 죄를 목숨으로 갚기 위해 하는 자살' 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한다. 자신이 잘못했으면 끝까지 살아남아서 그 잘못을 바로잡을 생각을 해야지 덜컥 죽어버리는 건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떠넘기는 무책임한 행위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특공이야 일본보다 먼저 민주주의를 접했으니 말할 것도 없이 '멍청하고 비인간적인 행위' 로 매도될 뿐이고. 또한 최근에는 일본에서도 이러한 상황에서의 자살을 미화하는 것 때문에 오히려 자살이 늘어난다고 해서 좋지 않게 보는 시각도 늘어났다고 한다.

    한편 일본은 '불명예를 씻기 위한 자살' 혹은 '자신의 죄를 목숨으로 갚기 위해 하는 자살' 은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더라도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에 따른 자살은 결코 좋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나라들보다 더욱더 나쁘게 본다. 그 이유는 남에게 피해를 끼치길 꺼려하는 화(和) 문화가 발달한 것이 크며 자살을 하면 자살을 수습하는 소방관과 경찰들을 비롯해서 가족과 애인과 친구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게 불가피하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일본 특유의 '메이와쿠' 문화의 영향이라 하겠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자살자가 자살하기 전 유서에서도 자살한 이유보다는 사죄의 말을 주로 쓴다. 생명을 끊어서 미안한 게 아니고 자기가 죽은 후의 뒷수습 등으로 민폐를 끼쳐서 미안하다는 이야기다[19].

    4.3. 기독교 문화권의 자살[편집]

    기독교에서는 5세기 초 성 아우구스티노가 자살을 죄악으로 규정한 이후로 그 영향력이 정통이 되어 기독교의 영향이 강한 서구과 미국에서는 자살을 결코 좋게 보지 않는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신국론〉에서는 당시 게르만족이 로마를 약탈할 때 겁탈을 당하고도 자결하지 않고 살아남은 기독교 여인들을 비난하거나 안 좋게 보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겁탈당하고도 자살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비난받을 이유는 없으며 오히려 자살은 스스로를 살해하는 행위라고 주장하게 되는데, 이 설이 기독교의 정통적인 입장이 되면서 자살이 나쁜 짓으로 규정된 것.

    성 아우구스티노가 근거로 든 것은 모세의 십계명의 "살인하지 말라"라는 구절이었는데, 사실 이 구절은 말 그대로 남을 살해하지 말라는 뜻일 뿐 자살까지 커버하는 표현은 아니다. 그러나 사실상 유대교 율법과 전통 상으로도 자살은 철저히 금지되었고, 이런 풍조가 기독교에까지 이어졌다. 현대 신학에서는 예외적인 경우 한정으로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하지만 어쨌든 중세까지는(그리고 지금도 보수적인 신자들은) 자살은 최악의 대죄라고 생각했고 자살자는 장례식조차 치르지 못하게 했다.

    기독교에서는 자살=살인이기 때문에 자살자는 살인자와 마찬가지로 지옥에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8세기에 일종의 편법으로써 사형을 목적으로 중죄를 저지르는 간접자살이 유행했다는 보고도 있다. 또한 자살을 뜻하는 영어 표현 중에는 'committing suicide', 즉 '자살을 저지르다' 라는 문어적인 표현이 있는데 이는 자살을 죄악시하는 기독교 문화의 흔적이다. 현대에는 suicide, killing oneself 등의 중립적인 표현이 더 흔하다. 프랑스어에는 suicider(자살하다)라는 단어가 존재한다.

    당시의 사회 인식의 대표적인 예가 단테 알리기에리신곡 지옥편에 있다. 여기서 자살한 자는 지옥의 8층 폭력의 층(남에게 해를 끼친 자, 자신에게 해를 끼친 자, 신과 자연 순리에게 해를 끼친 자)의 두 번째 고리에서움직일 수 없는 나무가 되어 영원히 고통을 받는 것으로 묘사되며, 최후의 심판 날에도 스스로 육체를 버렸으니 육체를 돌려받지 않고 나무에 걸어놓는다고 한다. 아주 극한 상황에 몰려서 자살한 사람도 '그래도 자살하지 말 걸' 이라고 후회할 정도. 그런데 이상하게도 로마의 카토는 연옥의 뱃사공으로 나오며 림보에서도 자살로 생을 마친 위인들이 몇몇 나온다. 아마도 단테가 당시 상황과 현재 상황의 차이를 인정해서 그런 듯하다.

    자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현대에도 마찬가지여서, 일본의 예와는 반대로 "책임을 통감하여 죽음으로 사죄..." 같은 행위는 오히려 책임을 회피하는 비겁한 것으로 간주한다.

    가톨릭의 경우, 과거엔 자살은 장례 미사도 못 올릴 정도의 사죄(死罪)로 취급했지만 현대에는 모든 상황을 자살로 보지 않는다. 자살로 신앙을 지키는 순교. 스파이가 임무 수행 중 국가를 위해 자살하는 경우, 전쟁 중 특별한 상황이나 조난 같은 극한 상황에서 자기희생과 같은 국가나 공동체를 위해 '불가피하게' 자살하는 경우 등이 있다. 또한 구원의 여부는 하느님만이 판단하실 일임을 근거로 가급적이면 자살자에 대한 처우를 일반적인 사망자와 다르지 않게 하는 경우도 있다. 즉 자살자가 죽는 순간 회개할 가능성도 생각해서 그 영혼의 구원을 하느님께 간구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이 경우는 흔치는 않다. 당연히 장례절차 등도 자연사/사고사[21]/병사한 사람들과 동등한 처우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대부분 장례미사가 아닌 사도예절로 장례식이 치러지며 직계 유가족 외의 다른 사람들이 모르게 조용히 치러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누가 봐도 명백히 멀쩡한 정신 상태에서, 무신론적 허무주의에 의한 것처럼 100% 자유 의지로만 행한 자살은 당연히 해당사항이 없다. 기독교 신앙에서는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을 해도 본질적으로 자살은 곧 죽을 죄이기 때문. 당장 배교를 요구받을 때 기독교 신자들은 자살을 택하지 않는 대신 배교를 거부하고 죽음을 조용히 받아들이는데 이것도 자살이 금기 사항이기 때문이다.

    개신교의 경우 거의 모든 종파가 부정적이다. 안재환 사건에서 보여지듯이 자살이라고 아예 배척하지는 않는 종파도 있기야 하지만 특이한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생명에 대한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으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인 건 마찬가지.

    세계적으로는 점차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자살을 무조건 지옥행으로 취급하지는 않는다. 단 개신교나 가톨릭이나 어디까지나 특정상황 하에서만. 다만 현대 개신교의 경우 우울증에 의한 자살은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이뤄진 게 아니라는 이유로 병사로 본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자살하다" 가 아닌 "자살당하다"(?!) 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고 보기도 하고, 이런 입장이 실제로 신학계에서 상당한 논란이 된 적도 있다.

    4.4. 이슬람교에서의 자살[편집]

    사실 이슬람교에 있어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최악의 행위 중 하나가 바로 자살이다. , 위험 상황에서 라마단 지키겠다고 고집부리다가 아사하거나 먹어야 할 약을 제때 먹지 못해서 사망하는 것도 자살로 처리한다. 그러니 이러한 위급한 상황에서는 설령 꾸란이나 율법, 계율에서 부정한 것으로 규정된 하람 계열 음식을 입에 대더라도 그 죄는 묻지 않고, 착실히 회개만 하면 된다고 한다. 게다가 특히 라마단은 며칠 정도 살짝 뒤로 미뤄도 된다.

    다만 알라를 위해 자살하는 경우는 인정하는듯. 그러나 주류 이슬람 계통 사람들이 말하듯, 이슬람 극단주의에 의한 테러는 이슬람교를 위한 것도, 알라를 위한 것도 아니며 이슬람교를 빌려온 사이비종교라고 싫어한다. 이들의 자살폭탄테러도 세계평화를 망치고 자살하는거나 마찬가지라 죄악으로 삼는다고...

    4.5. 자이나교에서의 자살[편집]

    유일하게 자살을 인정하고 있는 종교가 자이나교인데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이 자살을 용인하는 사실 때문에 고대 때부터 불교의 비판을 많이 받아왔고 육사외도로 분류되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자살을 용인하는 이유는 "태어난 이후부터 이 몸은 오롯이 자신의 것이며 이 신체의 자유를 박탈할 권리도 오롯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 자이나교에서 말하는 핵심으로 보인다. 라즈니시의 저서에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4.6. 철학에서의 자살[편집]

    안락사 같은 것과 관련해서 철학적인 논의는 또 다르게 진행된다. 말하면 유명한 윤리학적 틀에서 볼 때 이마누엘 칸트, 아리스토텔레스 등은 그르게 보고 공리주의는 케바케, 자유주의 혹은 자유지상주의 쪽에서는 그르지 않다. 칸트는 아예 대놓고 하지 말라고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기독교와 비슷하게 자살이 존재를 발전시키는 선(善)을 없애는 것라고 주장했으며, 공리주의는 경우에 따라서 자살하는 것이 더 많은 선을 발생시킬 경우에 자살이 옳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유일한 자유로운 활동을 자살이라고 보며 존재의 적극적 허무주의 긍정이라는 측면에서도 호의적으로 평가한다.[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자신이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는 허무감을 자살로 극복] 자살이 아닌 모든 행위는 외부 세계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있는 것 자체도 살고자 하는 본능에 의해 자유로운 행위를 할 수 없는 상태라고 보는데, 여기서 자유로워지는 선택을 하는 것이야말로 유일하게 자유로운 활동이라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을 없앨 수는 없으므로, 없애는 행동이야말로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극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자유지상주의의 경우는 위에 라즈니시랑 비슷하게 개인의 목숨은 개인의 것으로 보기 때문에 가능하다.

    4.7. 형법상의 자살


    국내 형법에는 촉탁ㆍ승낙살인죄[23]와 자살교사ㆍ방조죄라는 것이 있어서 자살을 방치하거나 도우면 죄가 된다.

    같이 자살하려다가 혼자만 산 경우에는 저 죄가 성립하여 법에 따라 교도소에 가게 된다. 정말로 같이 죽을 작정이었어도 자살방조죄고, 심한 경우 같이 자살하는 하면서 자기는 빠져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쪽은 위계에 의한 살인죄로 처벌된다. 신고는 했는데 경찰이 도착했는데 위계에 의한 살인죄가 적용되면 심히 억울할 것이다.

    왠지 스위스에는 이 죄목이 없어서 자살하려는 사람에게 약을 파는 정도는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자살을 원하는 여행자들이 스위스에 우글우글 모여든다고. 일명 자살 관광이라 불리고 있으며 스위스 국내에서도 문제거리. 시신 부검, 장례. 유가족 통보 등 여러 가지로 스위스 사회에 악영향을 끼쳐 관광 수입보다 더 많은 손실을 입히기 때문이다.

    4.8. 자살에 대한 세간의 취급[편집]

    한강의 일부 다리에는 유명인사들이 자살을 하지 말라는 권유 멘트가 하나씩 적혀있다. 배우, 코미디언, 만화가, 정치인 등 다양한 인사들이 기록했다. 그런데 이거 보고 왠지 더 슬퍼져서 자살하고 싶게 만들거 같다는 의견도 있다(...).

    간혹 자살하려는 사람에게 무섭지? 그것 봐. 넌 죽고 싶은게 아니라 살고 싶은 거야. 그러니까 죽고 싶은 마음으로 죽을 정도로 열심히 살아.라고 위로하는데 이런 소리는 내뱉지도 말라. 이건 살인무기다.  자살은 죽는 게 무서운데도, 사는 게 더 무서워서 고르는 마지막 수단이다. 만약 그 사람이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면, 혹은 찾았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말들은 상황만 악화시킬 뿐이다. 최악의 경우 자살하려던 사람이 빡돌아서 묻지마 살인이 벌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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