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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상징적 표현의 방법

Uncle Lee 2006. 12. 31. 08:22
1. 작품 전체가 하나의 상징을 이루는 경우



이러한 유형의 시에서는 시의 제목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시인의 시정
신을 상징적으로 함축, 암시해 주는 것이 바로 시의 제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유형의 시를 지을 경우 지나치게 애매하고 무분별한 개인적 상징의 덩어리를 만든 나머지, 그 작품이 상징적 여운을 주는 작품이 아니라 그저 난해하기만 한 작품이 되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할 일이다. 작품 전체가 주는 상징적 의미가 일상적이거나 현상적인 것에 머물지 않고 형이상학적 본질을 지향할 경우, 이런 유형의 시는 더욱 큰 감동의 여운을 주게 된다.

보편적인 소재를 사용하지 않고 어떤 특정한 소재에서 상징적 표현의 질료를 구할 경우 그 작품은 성공하기 어렵다. 상징적 사건을 제시하는 수법은, 시만이 줄 수 있는 애매성과 상징성의 결합효과에 의해 독자에게 큰 감동과 감미로운 여운을 줄 수 있다.
상징과 비유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전체성과 부분성의 차이에 있다고 할 때, 작품 전체가 하나의 상징을 이루는 유형으로 시를 장작해 보는 훈련은 가장 중요하면서 효과적인 습작방법이라 하겠다.

공중에 떠다니는
저기 저 새요
네 몸에는 털 있고 깃이 있지.

밭에는 밭곡식
논에는 물벼
눌하게 익어서 수르러졌네!

초산 지나 적유령
넘어선다
짐 실은 저 나귀는 너 왜 넘니?

- 김소월, <옷과 밥과 자유> -

위의 시는 김소월의 시 가운데 드물게 현실인식을 보여준 시인데, 시 전체가 하나의 상징으로 이루어진 좋은 본보기이다. 일제치하에서 자유를 빼앗기고 살아가는 우리 민족의 슬픈 현실을 "네 몸에는 털 있고 깃이 있지"라는 표현 속에 담아내고 있다. 새는 자유의 상징이고, 구속된 주체에서 보면 희망의 상징일 수 있다. 이 시에서 우리 민족은 구속된 상태이고, "짐실은 저 나귀"에서 보듯 고난의 상태에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한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적 자아의 열망이 '털이 있고 깃이 있는 새'의 부러움을 통해 잘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저승이 어딘지 똑똑히 모르지만
춘향의 사랑보단 오히려 더 먼
딴 나라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천길 땅 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
도솔천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더라도
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예요?

- 서정주, <춘향유문> -

위의 시는 춘향전의 설화를 기본 모티프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 얼핏 보면 상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좀더 자세히 살피게 되면 '천길 땅 검은 물속'이라든가 '도솔천'의 의미에서 보듯 불교의 윤회사상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시이다. 근원적 질서, 순화론적 세계 등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나타내 보임으로써 인간의 질서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2. 어떤 상징적 시어가 의도적으로 쓰여져 상징적 의미를
환기시키는 경우

비유와 상징의 차이는 상징이 보다 더 근원적인 사고에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유형의 시를 창작할 경우, 시쓰는 이는 상징적 사건의 창조보다 시어가 갖는 상징적 의미의 창조와, 그러한 시어가 그 작품의 전체적 흐름 속에서 상징적 재문맥화 작용에 어떻게 기여하는가를 신경써야 한다.
하나의 시어가 사전적, 일상적 의미로서가 아니라 상징적 의미로 쓰여질 때 재문맥화 작용이 이루어진다. 일상적이고 흔한 소재를 상징적 시어로 승화 시킬 때 거기서 오히려 상징의 확산과 상승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 김춘수, <꽃> -

김춘수의 <꽃>은 전후의 아픔 속에서 실존적 자기 물음에 팽배해 있던 1950년대에 나온 작품이다. 본디 꽃이 주는 보편적 의미는 아름다움이나 화려함일 것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꽃의 그런 의미는 전혀 풍기지 않고 존재론적 완성의 의미에 더 가깝다. 즉, 그 꽃은 그 자체만으론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만큼 꽃이 갖고 있던 상징적 의미가 전이, 확산을 거쳐 새로운 의미 생산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런 예는 다음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 서정주, <국화옆에서> -

서정주의 <국화옆에서>도 상징으로 이루어진 좋은 예이다. 국화는 우리의 고전시가에서 지조 있고 절제하는 선비의 상징으로 인식되어 있으나 이 시에서 원숙한 40대의 여인으로 상징되고 있다. 즉 국화꽃이 의도적으로 사용됨으로써 하나의 고정된 의미를 탈피하여 확산과 상승작용이 일어난 대표적인 경우에 해당된다.

3. 원형적 상징을 응용하는 경우

원형이란 가장 보편적인 상징이 될 수 있다. 융에 의하면, 원형을 사용하는 시인은 그 자신의 목소리보다 한결 강한 목소리로 독자에게 호소력을 가지게 된다. 예전의 시에서는 시인의 잠재의식에 의하여 원형적 상징들이 간접적으로 시에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의식적으로 원형적 상징의 세계를 작품 속에 투영시켜 시창작을 시도할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처음으로 시를 쓰려는 사람은 이를 의식적으로 사용하여 작품의 분위기를 조성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원형적 상징의 주는 의미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물(바다) - 창조의 신비, 탄생, 죽음, 부활, 재생, 어머니
2) 태양 - 자연의 법칙, 시간의 인생의 경과
3) 원 - 전체성, 생산, 풍요로움
4) 대지 - 어머니, 생산, 풍요로움
5) 바람 - 호흡의 상징, 공포
6) 사막 - 정신적 불모, 죽음
7) 십자가 - 고난, 고통, 시련
8) 봄 - 새벽, 탄생
9) 여름 - 인생의 절정기, 낙원
10) 가을 - 몰락, 비극, 영웅의 패배
11) 겨울 - 밤, 혼돈의 세계
이를 구체적인 시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경우이다.

바다 위에서 눈은
부드럽게 죽는다.

죽음을 덮으며
눈은 내리지만

눈은 다시
부드럽게 죽는다.

- 허만하, <데드마스크> -

위 작품의 경우 물이 이 시의 주된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물이 갖는 원형적 이미지가 탄생과 소멸 등 순환론적 질서에 따른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시는 대표적인 원형적인 모티프를 차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원형적 이미지는 자연현상 이외에 다음과 같은 신화적 상상력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나요, 오장환이요. 나의 곁을 스치는 것은, 그대가 아니요, 검은 먹구렁이여, 당신이요.
외양조차 날 닮았다면 얼마나 기쁘고 또한 신용하리요.
이야기를 돌리오. 이야길 돌리오. 그대의 동족뿐이요.
그대의 피는 거멓다지요, 불지를 않고 거멓다지요.
음부 마리아모야, 집시의 계집애모양,

당신이요. 층층한 아구리에 까만 열배를 물고 이븡의 뒤를 따른 것은 그대 사탄이요.
차디찬 몸으로 친친이 날 감아주시요. 나요, 카인의 末裔요. 병든 시인이요.
벌이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능금을 따먹고 날 낳았소.

- 오장환, <불길한 노래> -

인용시는 아담과 이브의 전설을 모티프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 즉 아담과 이므, 카인, 능금 등이 원형적 상징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것들인데, 결국 이 시는 인간의 근본적으로 죄를 짓고 태어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자연적 질서뿐 아니라 신화라는 모티프를 이용하여, 이를 원형적으로 응용해서 작품이 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출처 : 너에게로 가는카페
글쓴이 : 인간문화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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